2002년 문을 연 단종역사관은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재위1452~1455)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전시관으로
단종이 잠들어 있는 세계유산 조선왕릉 열월장릉(사적제 196호) 내에 위치해 있다
외관은 전통한옥으로 건축되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며
1층은 주제별로 전시실이 마련되어
단종의 세자 즉위에서부터 단종대왕으로 복권되기까지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볼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특별전시실과 단종유배길 · 단종문화제에 관한 자료
세자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둘러 볼 수 있다
단종역사관
1층 전시실
경복궁 근정전의 사진이 있다
조선왕실 계보도
단종의 탄생
세종대왕 · 단종대왕 태실수개의궤 / 1734(영조 10)
세종과 단종의 태실과 석난간을 수개하였을 때
그리고 태실의 표석을 세울 때의 여러 논의와 제의과정 · 석물의 형태 · 제작과정
동원된 인력과 물품 등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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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대왕실록 부록 찬집청의궤 / 1704(숙종 30)
「노산군일기」의 표제를 단종대왕실록으로 바꾸고
단종의 추복 과정을 정리한 부록을 편찬한 전말을 기록한 의궤이다
왕세자의 책봉
문종실록
정식 이름은 「문종공순대왕실록」이다
조선 5대왕 문종 재위 2년 4개월 동안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수록한 사서이다
단종 즉위
정순왕후금보 / 1698(숙종 24)
단량제경정순왕후지보( 端良齊敬定順王后之寶)
정순왕후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유배될 때 함께 부인으로 강봉되었다
1698년 왕비로 복위되자 제작한 어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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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금보
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지보( 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之寶)
단종이 승하한 해에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어보가 제작되지 않았으나
1698년 단종이 복위되자 시호를 올리고 제작한 어보이다
단종대왕실록 / 숙종 30(1704)
조선 제6대 왕 단종 재위 3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처음에는 노산군일기였으나 숙종대 단종이 복위되자 「단종대왕실록」으로 개칭하였다
장릉지 / 1711(숙종 37)
윤순거가 지은 「노릉지(魯陵志)」를 박팽년의 9대손 박경여가 권화와 함께
단종복위과정 및 사육신 복관 등의 과정을 추가 기록한 책이다
세종실록 / 1454(단종 2)
정식 이름은 「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獻大王實錄)」이다
조선 제4대 왕 세종의 재위 31년 7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서사이며
모두 163권 15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유정란
고려사절요 / 1453(단종 1)
김종서가 고려시대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책으로 32권으로 이뤄졌다
고려사가 기전체로 서술된 것에 비해 고려사절요는 연 · 월순으로 기술되었으므로
정치적 사건 추이를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된다
정순왕후 책봉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뒷면
단종께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 · 유배되어 계시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비석이다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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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16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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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16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 옆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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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16
정순왕후 탄생지 비석
정순왕후가 태여난 곳임을 표기한 비석으로
1698년(숙종24) 증조부 송계성 유허비 옆에 세웠던 것을
1988년 새롭게 재정비해 세운 비석이다
비해당소상팔경시첩 / 보물 제1405호
비해당 안평대군이 중국의 소상팔경을 대상으로
고려의 이인로 · 진화의 시와 김종서 · 박팽년 · 성삼문 등 19명의 글을 두루마리로 꾸민 것이다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 조선후기
박팽년 · 성삼문 · 이개 · 하위지 · 유성원 · 유응부의 시문집을 모아 간행한 책이다
박팽년의 7대손인 박숭고가 편집하여 발간하였다
이선생유고 / 조선 후기
사육신 중 한 명인 이개(1417~1456)의 시문집으로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3권 중 일부이다
성근보집 / 영조 이후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1418~1456)의 시문집이다
성삼문의 본관은 창녕 · 자는 근보(謹甫) · 호는 매죽헌이다
단종의 선위
세조실록 / 1471(성종 2)
정식 이름은 「세조혜장대왕실록」이다
조선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14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이며
모두 49권 18책으로 간행되었다
사육신과 단종복위운동
매죽헌선생집 / 조선 후기
사육신 중 한 분인 성삼문(1418~1456)의 시문집이다
성삼문의 본관은 창녕 · 자는 근보(謹甫) · 호는 매죽헌이다
박선생유고 / 1658(효종 9)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1417~1456)의 시문집으로
1658년(효종 9) 7대손 박숭고가 편집 · 간행하였다
추강집 / 1922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생육신 남효온(1454~1492)의 시문집이다
본관은 의령 · 자는 백공(伯恭) · 호는 추강(秋江) · 행우(杏雨) · 최락당(最樂堂)이다
경은일고 / 1833(순조 33)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생육신 이맹전(1392~1480)의 문집이다
본관은 벽진(碧珍) · 자는 백순(伯純) · 호는 경은(耕隱)이다
단종의 유배
금성대군 금성단에 세운 비 / 1742(영조 18)
유명조선 단종조충신 금성대군 성인신단지비 (有明朝鮮 端宗朝忠臣 錦城大君 成人神壇之碑)
순절한 금성대군을 추모하기 위해 유허지에 설치한 금성단 왼쪽에 있는비다
금성대군과 단종복위운동
단종사적 / 조선후기
단종 폐위 후 노산대군 추봉을 비롯해
단종 복위 등의 사실을 편년체로 엮은 역사서이다
해동지도 중 영월부 / 18세기 · 보물 제1591호
영조 때 제작된 전국 군현을 총망라한 대표적인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8책 · 채색 필사본이다
청령포
월중도 중 자규루도 / 1698(숙종 24)
관풍헌 동남쪽에 있는 누각인 자규루를 그린 것이다
자규루는 1605년(선조 38) 홍수 때 유실되어 1791년(정조15) 중건하였다
자규루(子規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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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15
단종어제(端宗御製) 자규사(子規詞)
月白夜蜀魂啾(월백야촉혼추) / 달 밝은 밤 두견새 울제
含愁情倚樓頭(함수정의루두) / 시름 못잊어 누(樓) 머리에 기대었노라
爾啼悲我聞苦(이제비아문고) /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가 괴롭도다
無爾聲無我愁(무이성무아수) /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것을
寄語世上苦勞人(기어세상고노인) / 세상에 근심 많은 분들에게 이르노니
愼莫登春三月 子規樓(신막등춘삼월자규루) / 부디 춘삼월 자규루에는 오르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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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6대 임금 단종(端宗)이 강원도 영월로 귀양갔을 때
매죽루에 올라 자규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의 애처로운 심정을 읊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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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15
월중도 중 장릉도 / 1698(숙종 24)
단종 장릉을 중심으로 청령포 · 관풍헌 · 자규루 · 창절사 등
8곳의 명소별 배치 안내도이다
엄흥도 정려비 / 1879(고종 16)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1879(고종 16)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아 1879년 비석을 다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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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사 단종비 / 1955
망경사 내 단종 비각에 있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지비(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이다
ㅇ뎡월에서 승하한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엄흥도 정려비 / 1879년(고종 16)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1876년(고종 13)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아 1879년 비석을 다시 고쳤다
하늘망경사 단종비 / 1955년
망경사 내 단종 비각에 있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와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이다
영월에서 승하하신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비문(碑文)의 글씨는 탄허 스님의 친필이다
정순왕후의 생애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朝鮮國 定順王后 思陵) / 1771(영조 47)
장릉과 같이 사릉에도 비를 세워야 한다는 상소에 의해 비를 설치했다
뒷면에는 정순왕후의 생몰과 책봉 · 강등 · 승하 등 주요 생애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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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 1771(영조 47)
정순왕후가 궁궐에서 쫓겨나 살았던 정업원터에
영조가 78세 되던 해에 친필로 세운 비이다
정업원구기와 비각 사진이 옆에 있다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朝鮮國 定順王后 思陵)
장릉과 같이 사릉에도 비를 세워야 한다는 상소에 의해 비를 설치했다
뒷면에는 정순왕후의 생몰과 책봉 · 강등 · 승하 등 주요 생애가 새겨져 있다
정업원도 / 조선 후기
「장릉사보(莊陵史補)」에 실린 정업원 배치도이다
정업원은 고려 · 조선시대 비구니들이 살던 곳으로
정순왕후 1612년(선조 40) 폐지되어 비구니들은 성밖으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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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도 / 1791
「장릉사보(莊陵史補)」에 실린 사릉의 배치도이다
천마산을 조산 · 덕암산을 주산으로 하여 능역 좌우 능선을 감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 1771(영조 47)
정순왕후가 궁궐에서 쫓겨나 살았던 정업원터에
영조가 78세 되던 해에 친필로 세운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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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9. 25
정순왕후 사릉
200년의 세월 예를 갖추다
문경공낙촌밀양박충원선생기적비(文景公駱村密陽朴忠元先生紀蹟碑) / 1973
낙촌비각은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묘를 찾아 정비하고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낸 박충원의 충신 됨을 후세에 알리고자 1973년 세운 것이다
박충원 교지 / 1757년 (영조 33)
박충원(1507~1591)에게 「문경(文景)」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지이다
단종복위와 장릉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곤룡포에 익선관을 쓰고 백마를 단종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충신 추익한(秋益漢)의 모습 / 운보 김기창
추익한이 꿈에서 본 단종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영월에 유배된 단종을 보살피던 추익한은 이 꿈을 꾸고 영월에 달려왔으나
단종이 이미 승하한 것을 알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지금의 단종어진이 지정되기 전에는 이 그림을 단종의 영정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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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전시관은
세종대왕 · 단종대왕의 태실을 개수하는 내용을 기록한 의궤를 볼 수 있는 특별전시실과
단종유배길 · 단종문화제에 관한 자료와
왕세자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둘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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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고
지난 번 방문 때와 같은 내용이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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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