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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심훈기념관

심훈기념관

일제강점기, 소설가 · 시인 · 영화인이었던 심훈의 대표적 농촌계몽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한

당진 필경사 일원에 그의 항일 및 계몽정신을 후세에 선양하고자 건립하였다

 

 

심훈기념관

 

 

 

 

심천보 / 2016. 9. 16 한화생명 Eagles Park

심훈 작고 80주년을 추모하여 심훈Day로 지정하였고 심훈 종손인 심천보씨가 시구에 참여하였다

 

 

 

 

야구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던 야구장으로 오라!

마음껏 소리질러보고 싶은 자여, 달려오라!

6월의 태양이 끓어내리는 그라운드에

상청수 같이 버티고 선 점 · 점 · ··· ··· "

*

심훈이 1929년 6월 10일 지은 시이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1936년 8월 16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승전보를 알린 손기정 · 남승룡 선수

심훈이 두 선수의 낭보에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로 마지막 글을 남겼다

 

 

 

 

심훈 沈熏

늘 프르고자 했던 항일민족 문학의 영원한 청년

 

 

 

 

심훈의 일생

심훈의 탄생과 성장 / 1901 ~ 1919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 검은돌집(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심대섭 · 호는 삼준 · 삼보 · 금강생(金剛生) · 해풍(海風) · 백랑(白浪) 등이 있다

1915년, 서울 교동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에 입학하고, 1917년 3월 왕족 이해영과 결혼하였다

아버지 심상정은 은로보통학교 교장과 신북면장을 역임했고, 외조부 윤현구는 조선 말 3대 문장가인 윤희구의 막내로 시 ·  · 화에 능했다

큰형 심우섭은 희문의숙 1회 졸업생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와 경성방송국 과장을 역임하였다

작은형 심명섭은 동경 청신학원을 졸업했고, 심훈의 미완성 소설 〈불사조〉를 완성하고, 시집 〈그날이 오면〉을 발간하였다

*

3 · 1운동 참여와 수감 / 1919

학교에서 일본 수학선생의 민족차별에 대한 항거로 시험 때 백지를 내어 과목낙제로 유급되기도 하였다

1919년, 심훈은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시 3 · 1운동에 참가하여, 3월 5일 붙잡혀 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고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다

이 때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을 썼는데 이 편지는 문인으로서의 심훈의 민족의식을 나타낸 첫 작품이기도 하다

*

좌절과 극복 / 1920~1924

1920년, 국문학자 이희승에게서 한글 맞춤법을 배웠으며, 중국으로 망명 유학길을 떠나

중국에 있는 동안 우당 이회영 · 단재 신채호 · 석오 이동녕 · 성재 이시영 등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감화를 받았으며

엄항섭 · 유우상 · 정진국 등 임시정부의 청년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시 「박군의 얼굴」의 박헌영과도 상해에서 조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심훈은 우당 이회영의 집에서 2개월여를 지냈는데, 이회영은 1930년대 초반까지 국내 및 만주와 중국본토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민족주의와 학구열이 왕성한 19세의 심훈과

인격과 학식을 갖추고 민족독립운동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53세의 완숙한 경지에 달한 이회영과의 만남은

훗날 심훈이 민족적 애국주의 시와 농민소설을 집필하는데 중요한 사상적 토양이 되었으리라 보인다

1921년, 북경에서 상해 · 남경 등을 거쳐 항주의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 · 수학하기도 하였다

1923년, 중국에서 지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 후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였고, 이해영과 이혼했다

1924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였다

*

문학인 그리고 영화인 / 1925~1927

1925년, 영화 〈장한몽(長恨夢)〉 주역인 이수일 역의 후반부를 대역하기도 하였다

1926년, 최초의 영화소설〈탈춤〉을 동아일보에서 34회에 걸쳐 연재를 하였다 · 필명 "훈"을 쓰기 시작하였다

1926년, 철필구락부 사건으로 동아일보사 퇴사하였다

1926년 4월 29일, 순종의 국장이 준비되고 있는 돈화문 앞에서 〈통곡 속에서〉를 지었고 5월 16일 자 시대일보에 발표하였다

1927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일활촬영소에서 영화를 공부하다가 6개월만에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직접 원작 · 각색 · 감독하여 단성사에 개봉하였는데

이 영화는 당시 〈아리랑〉에 이어 한국영화 개척기의 또 하나의 명작이라 일컬어졌다

〈먼동이 틀 때〉는 매우 사실적이고도 인물의 묘사가 극명하여 무성영화시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심훈은 수많은 시나리오와 영화평론을 많이 남겼지만 직접 감독한 작품은 아쉽게도 〈먼동이 틀 때〉 한 편에 그쳤다

 

 

 

 

청송심씨가 호패 및 심상정(심훈 부친) 명함 · 서울 종로구 가회정 1번지 호적

심대섭(沈大燮 · 본명 심훈)은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윤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1917년 5월 25일 왕족 이해영과 결혼하였다

 

 

 

 

상록수 / 심훈

농민운동과 동지적 사랑을 그린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농촌계몽소설이다

 

 

 

 

청송심씨 가계도

海平尹氏(해평윤씨) · 相珽(상정) 1871~1950

1901~1936 대섭(大燮 본명 심훈(沈熏) · 명섭(明燮) · 友燮(우섭) 1890~1948

은진송씨(恩津宋氏) 재영(載英) 1912~1995

영보(永輔) · 덕보(德輔) · 천보(天輔) 1940

규천(揆天) 1969

 

 

 

 

심훈의 일생 / 1928~1936

1928년, 일제의 검열이라는 제한적인 글쓰기가 형성되어가는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하여 여러 편의 영화논평을 작성한다

1930년, 안정옥과 혼인하고 · 1930년 3월 1일 「그날이 오면」을 집필하였다

1930년,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을 조선일보에 연재(검열에 걸려 중단) · 장편소설 「불사조」 조선일보에 연재(검열에 걸려 중단)

1931년, 조선일보를 사직하고 경성방송국 문예담당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사상문제로 퇴직하였다

*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1932~1936)

1932년, 일제의 탄압으로 부모님이 살고 있던 당진으로 이사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하였으며,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판하려다 검열로 인해 무산되었다

1933년,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7월 10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1933년 8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취직하여 상경하였으나 다시 당진으로 이사

1934년, 장편소설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집을 지어 필경사(筆耕舍)라 불렀다

1935년 8월, 장편소설 〈상록수〉 동아일보 당선 · 이때 받은 상금 일부를 야학당에 후원

1936년 1월, 단편소설 〈황공의 최후〉 신동아에 발표

1936년 8월 16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생의 우승에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로 마지막 글을 남겼다

이후 상록수 출판 관계로 상경했다가, 당시 전국적으로 퍼진 장티푸스에 걸려 9월 16일 36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서울 검은돌집 사랑 앞에서

심훈(왼쪽 3번째) · 심상정(맨 오른쪽)

 

 

 

 

필경사잡기(筆耕舍雜記 · 원고 사본)

 

 

 

 

단장이수(斷腸二首) 그날이 오면 / 심훈

 

 

 

 

3 · 1운동

기미독립운동이라고도 하는 · 1운동은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독살설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종의 인산일인 1919년 3월 3일보다 이틀 앞선 3월 1일에 전국적으로 봉기했고, 시위는 약 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일제의 기록에 의하면 집회인 수가 202만여 명 · 사망자 수가 7,509명 · 구속된 자가 4만 7,000여 명이었다고 한다

 

 

 

 

건국훈장 애국장 / 2000년 8월 15일

 

 

 

 

· 1만세운동으로 피체되어 재판을 받은 심훈 선생의 판결문 / 1919. 11. 6 경성지방법원 · 판결문 내용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1919년, 심훈은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시 3 · 1운동에 참가하여, 3월 5일 붙잡혀 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

었고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다

이 때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을 썼는데 이 편지는 문인으로서의 심훈의 민족의식을 나타낸 첫 작품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에 대한 굳은 의지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이었던 심훈은 맨 앞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에게 체포되고 학교로부터 퇴학 조치를 당했다

당시 회유정책으로 20세 미만의 학생에게는 "다시 독립운동을 할 터인가?" 물어보아서 안하겠다고 대답하는 학생은 석방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심훈은 자신의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면서"일본이 내 목을 이렇게 잘라도 죽기까지는 독립운동을 하겠오"라고 하였다

결국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나옥중에서도 민족독립을 향한 결의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권기옥 지사의 심훈 추모시

 

 

 

 

심훈 초등학교 시절 생활성적표 / 1914

 

 

 

 

심훈 초등학교 시절 생활성적표

 

 

 

 

심상정(심훈 선생님 부친) 적십자 경성지구 시흥위원부 지방위원 촉탁증명서 / 1915년

 

 

 

 

심상정(심훈 선생님 부친) 시흥군 신북면장 관련 글

 

 

 

 

아세아주의 제1책 / 1921년

 

 

 

 

초아 / 1922년

중국 신문화주의 시기 강백정(姜白情)의 작품

 

 

 

 

언론인 심훈

 

 

 

 

기자시절 심훈

 

 

 

 

언론을 위한 투쟁

 

 

 

 

심훈의 사진과 책 / 3 · 1운동 / 언론인 심훈

 

 

 

 

심훈의 사진과 책 전시관

 

 

 

 

심훈 선생님 엽서

심훈 선생님 영화 관련 자료(추정)

 

 

 

 

조선민요집 / 1929년

 

 

 

 

6 · 10만세 운동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을 기해 만세시위로 일어난 학생 중심의 민족독립운동이다

1920년대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에 맞서 조선 민중이 전개한 대표적인 대중적 반일투쟁의 하나이다

1926년 4월 25일 조선왕조의 마지막 국왕인 순종이 사망하자 전국 각지에서 조선 민중들의 반일감정이 급격히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 10만세 운동으로 전국에서 5천여 명이 연행되었고 일제의 야만적 폭행으로 160여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하였다

또 감옥에서 고문으로 불구가 된 사람이 10명이 넘었으며, · 10만세투쟁 총책임자였던 권오설은 적들의 간악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살해되었다

 

 

 

 

선언 · 보헤미안의 노래 · 조선유기 · 인도혁명 · 만몽론 · 독립정신 · 비율빈의 발전 · 서상 · 일본론

 

 

 

 

1933년 동료 문인들과 함께 한 심훈(앞줄 맨 왼쪽)

 

 

 

 

1929년 동료 문인들과 함께 한 심훈(오른쪽 끝)

 

 

 

 

안종옥 여사와 세 아드님

 

 

 

 

심훈과 안정옥 여사가 함께한 결혼식 장면

 

 

 

 

단성사(團成社)

운 좋게도 영화 《장한몽》의 주연배우로 출연하게 된 것은

이수일 역을 맡은 주삼손이 촬영 중에 행방불명되어 찾아온 행운 같은 것인데

이 영화의 끈이 죽기 전까지 함께 할 줄이야...

 

 

 

 

심훈 선생님 엽서

 

 

 

 

상록수의 시간 속으로...

 

 

 

 

사진첩

공동경작회 회원들의 사진과 심훈 선생에게 도움을 주었던 부곡리 사람들을 확대한 사진이다

심훈 선생은 그의 글에서 「조선의 영웅」에서 백 명의 이론가 · 천 명의 예술가보다

농촌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농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계몽운동을 하는 이들을 조선의 영웅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의 영웅인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부곡리 공동경작회의 모습 사진 / 1937년 9월 28일

 

 

 

 

상록수의 여주인공 모델 최용신 양(1909~1935) · 상록수의 남주인공 모델 심재영 군(1912~1995)

 

 

 

 

정말국민고등학교 교과서 / 저자 박인덕

 

 

 

 

농업강의록 제2권

 

 

 

 

상록수의 여주인공 모델 최용신 양

 

 

 

 

상록수 소설 속의 주인공

심재영 선생 상록수 박동혁의 실제 인물 · 최용신 선생 상록수 채영신의 실제 인물

심재영 선생과 공동경작회 회원 · 최용신 선생과 샘골부녀회       

 

 

 

 

YMCA 역사중에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고 최용신 양의 유언(최용신 선생님의 유언 대필 · 복사본)

 

 

 

 

심재영 선생님 경성공립농업학교 졸업증서

 

 

 

 

농촌계몽운동과 상록수 · 옛 필경사 전경 사진

 

 

 

 

청춘 4 / 1917년 新文館(신문관) 최남선 창간(1914년)

 

 

 

 

한문 대한지지(漢文 大韓地誌) / 1907년 · 1955년 개간 · 사장 주요한

한말의 문신 이원긍이 한국의 정치지역의 연혁과 8도 지지 산천의 분포 현황을 교육용으로 엮은 책이다

 

 

 

 

영화 상록수

동혁과 영신의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농촌계몽운동으로 이어지다

 

 

 

 

 

심훈의 시를 터치스크린으로 골라 들을 수 있다

 

 

 

 

동방의 애인 · 불사조 · 상록수 · 영원의 미소 · 직녀성

 

 

 

 

심훈의 상록수 정신을 잇는 노력

상록학원 · 심훈상록문화제 · 심훈상록수기념사업회 · 상록탑

 

 

 

 

그날이 오면 시비와 심훈 상

심훈기념관 옥상이다

 

 

 

 

7월의 바다

 

 

 

 

아산만 방향

심훈기념관 옥상에서 봤다

*

(2023. 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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