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행주산성

행주산성을 돌아보고 주변에 있는 행주역사공원 · 행주서원 · 행주성당 · 행주나루터를 찾았다

 

 

능곡역

행주산성을 걸어서 왕복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랄 듯해 이곳에서 마을버스 011번을 탔다

 

 

 

 

행주산성 버스정류장

걷기 시점이다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 LVT P-7 수륙양용 장갑차

6 · 25동란 당시 한미연합해병대가 한강도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 빛나는 공훈을 세움으로

이를 기리기 위하여 당시 도강 지점인 행주대교 북방 서원마을 산봉에 최초의 비를 건립하였던 것을

규모와 모습을 정성껏 가다듬어 해병대사령부에서 현 위치에 다시 세웠다

*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감행한 한미연합해병대가 다시 적을 추적하여

1950년 9월 20일 행주나루에서 치열한 혈전 끝에 도강작전을 성공함으로써 서울 진격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

LVT P-7 수륙양용 장갑차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한국 해병대에서는 1958년 도입하여 1986년까지 운용하였다

 

 

 

 

행주대교

덕양산자락 너머로 보인다

*

행주산성 버스정류장에서 봤다

 

 

 

 

행주산성 주차장 오른쪽이다

 

 

 

 

행주산성 주차장 왼쪽이다

 

 

 

 

대첩문

행주산성 삼문이다

 

 

 

 

평화를 여는 길 빗돌 · 평화의 길 종합안내도

DMZ 평화의 길 시작점이다

 

 

 

 

행주산성 안내도

 

 

 

 

충훈정(忠勳亭)

1986년 건립하였으며 2층 누각으로 팔작지붕에 정면 5칸 · 측면 5칸 규모이다

옛날의 주무기인 각궁의 연습도장으로 심신을 단련하며 호국의식을 함양하는 국궁장이다

행주대첩제 때에는 국궁대회가 열리며, 봄 · 가을 주말에는 국궁체험장을 별도로 운영하여 일반관람객에게도 국궁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권율 장군 동상

「충장공 권율 도원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1986년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조각가 김세중이 제작하였다

동상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4점의 부조물은 권율 장군과 함께 행주대첩을 이루어낸 관군 · 승병 · 의병 · 여성들의 항전모습이다

동상 규모 / 높이 4.5m · 기단 3.5m · 총 8m이다

 

 

 

 

충훈정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쉼터(사진전시장)

「권율장군과 동산동 밥할머니」 안내판이 있다

 

 

 

 

쉼터(사진전시장)

사진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충장사

전시되어 있는 사진 중 하나다

 

 

 

 

행주대첩비

 

 

 

 

덕양정 · 행주대첩비 · 충훈정

 

 

 

 

권율 장군 동상

 

 

 

 

2022 행주산성 스케치대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홍살문

충장사로 들어가는 길로 삼도로 그려져 있다

 

 

 

 

충장사(忠藏祠) 삼문

 

 

 

 

충장사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규모는 정면 3칸 ·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1970년 건립했다

매년 임진왜란 행주대첩일인 3월 14일에는 고양시에서 주최하는 행주대첩 제전행사를 봉행하고 있다
권율 장군 사당은 이전 1842년 조선 헌종 때 현재의 행주서원 자리에 지은 기공사가 있었다

그러나 전란 등으로 무너져 1970년 행주산성 정화사업으로 행주산성 내에 충장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건립하였고 이후 기공사도 예전 자리에 복원하였다

 

 

 

 

충장사 현판

전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다

 

 

 

 

권율 장군 영정

장우성 화백의 그림이다

 

 

 

 

행주대첩비 · 전사청

전사청은 1987년 건립하였으며, 충장사 제례봉행 때 필요한 제례용품들을 보관하는 장소다

 

 

 

 

소원성취 돌 · 행주가(街) 예술이야(夜)

 

 

 

 

행주대첩기념관

1593년 2월 12일(선조 26) 행주산성 전투 당시 사용된 신기전을 비롯하여 각궁 · 총통 등 무기류와

권율 장군의 승전 모습을 담은 행주대첩도 · 충남 금산 이치대첩도 · 오산 독산성 싸움도 등 기록화 3점 · 토성에서 출토된 와당 · 토기 파편 등의 유물

그밖에 조선시대 장군과 나졸 형상과 대첩비문 액자 및 병풍 · 망암 변이중 선생 문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전시되어 있는 무기류는 일본군의 조총을 능가하는 과학적으로 설계된 무기이며 행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행주대첩기념관 내부

 

 

 

 

덕양정

 

 

 

 

행주대첩비(재건비) · 행주대첩비(초건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

행주대첩 초건비는 1602년 건립한 것으로 크기는 178㎝ · 너비 80㎝ · 두께 18㎝의 흑색이 가비된 화강암 재질이다

권율 장군이 돌아가신 후 행주대첩의 승전을 되살리고자 장군의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이 비의 앞면 글을 짓고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비의 머리글은 김상용이 썼다

행주산성에 있는 유일한 문화재이다

*
정상에 서있는 15.2m의 행주대첩비는 1970년 건립한 것으로 탑신의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고 아래 비문은 신석호가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썼다

1963년 경기도민과 가계유지들에 의하여 세워진 기념비로 1970년대 국토정화사업의 일환이었던 행주산성보수정화사업에 의해 새롭게 보수 · 재건되었다

 

 

 

 

행주대첩비(초건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

권율 공이 사망한 지 1주년이 되어 막료였던 인사들이 과거 행주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그 공적이 대단히 컸던 것을 기려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비를 세워서 그 공적을 영원히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을 결정하고 비문을 지었다

 

 

 

 

행주대첩비 현판

 

 

 

 

행주대첩비(초건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에서 권율(1537~1599) 도원수가 왜병을 격퇴한 승전을 기념하여 선조 35년(1602) 6월 장군의 부하들이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1593년 행주대첩의 경과와 권율 장군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며, 크기는 178㎝ · 너비 80㎝ · 두께 18㎝의 흑색이 가비된 화강암 재질이다

비문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이 지었고 비의 명칭은 김상용, 글씨는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끝의 추기는 이항복이 지었고 김현성이 썼다

이 비는 비각을 세워 보존하였으나, 오랜 세월 풍화작용과 마모로 비 몸이 갈라지고 떨어져 같은 재질로 보수된 상태이며

현종 11년(1845) 같은 내용의 비(중건비)를 기공사에 세워 놓았다

*

행주산성에 있는 유일한 문화재이다

 

 

 

 

권충장공승전비각건축기(權忠莊公勝戰碑閣建築記)

 

 

 

 

행주산성보수정화기

 

 

 

 

원수권공행주대첩비(元帥權公幸州大捷碑)

 

 

 

 

행주대첩비(幸州大捷碑 · 재건비)

행주대첩비는 1970년 건립한 것으로 탑신의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고 아래 비문은 신석호가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썼다

1963년 경기도민과 가계유지들에 의하여 세워진 기념비로 1970년대 국토정화사업의 일환이었던 행주산성보수정화사업에 의해 새롭게 보수 · 재건되었다

 

 

 

 

봉대산 · 대덕산

행주대첩비가 있는 덕양산 정상에서 봤다

 

 

 

 

봉대산 · 대덕산 · 마곡대교

 

 

 

 

충의정

행주산성 영상교육관으로 호국정신을 계승 · 함양을 위하여 1978년 지어졌으며, 십자형지붕에 정면 3칸 ·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17분 분량의 영상자료 〈행주대첩과 권율장군〉을 상시 상영하는데 오늘은 문을 닫었다

 

 

 

 

행주산성 전망대

 

 

 

 

행신역

 

 

 

 

봉대산 · 강고산 · 창릉천

행주산성이 쌓여져 있는 덕양산은 북한산 · 고봉산과 함께 고양지역의 전략적인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고양시의 서남쪽 끝에 자리한 이곳 덕양산에서는 고양시와 그 인근 일대를 볼 수 있는데 동쪽으로는 북한산이 우뚝 솟아 있다

북한산 백운대 아래에서 시작된 창릉천은 한강으로 들어가는데 그 주변에 삼송신도시가 자리한다

북한산 오른쪽으로 서오릉이 있는 응(매)봉이 있고 산줄기를 따라 화전의 망월산 · 대덕동의 대덕산 등이 있다

덕양산 바로 앞에는 예전 봉수대가 있던 강매동 봉대산이 있다

이외에도 서울 남산 · 안산 · 인왕산을 볼 수 있으며 남쪽으로 자유로 · 한강 · 관악산 등을 볼 수 있다

 

 

 

 

토성(土城) 가는 길

 

 

 

 

행주산성 토성(幸州山城 土城)

덕양산(124.9m)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전체 둘레는 약 1km이며, 현재는 약 415m 정도가 복원되어 있다

산성의 남쪽은 한강에 맞닿아 있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며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 일대는 경사가 매우 급하여 자연적인 요새지로서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內城)과, 북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外城)의 이중구조이다

이 산성은 행주대첩(1593)의 역사적 전승지이며, 한산대첩 · 진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지로 꼽히고 있다

산성의 정상에는 선조 35년(1602)에 세운 대첩비(초건비) · 1963년 문화재 정화사업으로 세운 15.2m의 행주대첩비(3호비)가 위치해 있다

 

 

 

 

강고산 · 창릉천 · 봉대산 · 대덕산

진강정으로 가는 길에서 봤다

 

 

 

 

방화대교

 

 

 

 

진강정(鎭江亭)

1970년 건립한 사각지붕 · 건평 36㎡의 정자로 호젓한 위치에 있어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정자 이름은 한강의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로 진강(鎭江)이다. 한글 현판으로 서희환 선생의 휘호이다
특히 이곳은 2013년부터 행주나루터와 연결된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이 지나는 곳으로 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진강정(鎭江亭) 현판

서희환 선생의 휘호이다

 

 

 

 

SBS 잘먹고 잘사는 법 · 식사하셨어요? 촬영지 안내판

 

 

 

 

행주산성 쪽문

평화누리길 안내판이 옆에 있다

 

 

 

 

고양 행주수위관측소 / 등록문화재 제599호

191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창릉천과 한강의 합류점인 경기도 고양시 행주내동에 설치된 후 한강 수위 관측을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내무부 · 건설부 · 국토교통부 한강통제소 등의 관리기관을 거쳐 운영되어 왔으며

1979년 관측을 종료한 후, 1980년 관측소를 폐쇄하였다

 

 

 

 

고양 바람누리길 종합 안내

행주산성 들머리 계단 옆에 있다

 

 

 

 

고양대덕생태공원으로 건널 수 있는 보다

 

 

 

 

고양 행주산성 누리길

강매석교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행주산성 먹거리촌 · 강매석교 방향안내판

 

 

 

 

고양 행주산성 누리길 안내판

 

 

 

 

원조국수집

이곳에서 점심을 했다

 

 

 

 

평화누리길 4코스 · 순환코스 아치

 

 

 

 

행주산성로

식사를 하고 행주산성역사공원으로 간다

 

 

 

 

추강 남효온시비(秋江 南孝溫 詩碑)

조선 단종 때의 문신으로 사육신(死六臣)의 충절을 후세에 널리 알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시비는 높이 3.6m 오석으로 앞면에 「행주 성황당에 올라」 · 「강나루 주막에 묵으며」  두 편의 시가 있고 뒷면에는 추강 남효은의 일대기가 있다

*

숙강포거려(宿江浦遽廬) / 강나루 주막에 묵으며

환고포육자(紈袴飽肉者) / 비단옷 두르고 고기반찬에 배부른 자

안지서산궐(安知西山蕨) / 수양산 고사리 맛 그 어찌 알겠는가

비주불동혈(飛走不同穴) / 날짐승 길짐승이 보금자리 달리하듯

아독치간알(我獨恥干謁) / 나만은 벼슬 탐하는 것 부끄럽게 여기노라

견무심요술(畎畝尋要術) / 시골에 묻혀 밭고랑을 일구며

어주비일월(漁舟費日月) / 뱃전의 낚시질로 세월을 보낸다네

인생적의이(人生適意耳) / 한세상 사는 삶이 뜻대로면 그만이지

하용종세올(何用終歲矹) / 어찌하여 한평생을 아등바등 지낼 것가

*

등행주(성황당登幸州城隍堂) / 행주 성황당에 올라
성황당하락하명(城隍堂下落花明) / 성황당 아래 떨어진 꽃잎 선연한데
압도남두조수생(鴨島南頭潮水生) / 압도 남쪽 언저리엔 밀물이 밀려오네
계마총림좌청초(繫馬叢林坐靑草) / 수풀에 말 매고 푸른 풀 깔고 앉아
격강문창오계성(隔江聞唱午鷄聲) / 강 너머 들려오는 닭 울음 듣노라
백수련천동아전(白水蓮天動我前) / 하늘 잇닿은 행주강 흰 물결 내 앞에서 찰랑이고
어주래박공암변(漁舟來泊孔巖邊) / 고깃배 저어온 사공 공암가에 닻 내린다
산소백주등림처(山蔬白酒登臨處) / 풍광 좋은 곳에 올라 산나물로 막걸리 즐기니
병객명모골욕선(病客明眸骨欲仙) / 병든 이내몸 눈 밝아져 신선이나 되었으면

 

 

 

 

행주산성역사공원

 

 

 

 

개화산

행호는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덕양산 부근의 한강으로 호수처럼 넓다고 해서 「행호(杏湖)」라고 불린다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杏湖觀漁)는 행호에서 고기 잡는 것을 본다는 뜻으로 개화산에서 이곳을 그린 그림이다

 

 

 

 

빨랫돌머리 전망대

빨래돌머리는 행주산성에서 하류 방향으로 있는 지명이다

이곳은 바윗돌이 있어 예전부터 행주마을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화산

빨랫돌머리에서 봤다

 

 

 

 

행주대교

 

 

 

 

유채밭

십자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봄에 피는 노란꽃으로 유명하다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다. 씨에서 짜낸 기름을 카놀라유라 한다

 

 

 

 

개화산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달하던 곳이다

 

 

 

 

행주대교

 

 

 

 

장항버들장어전시관

우리나라 24번째 람사르 습지인 고양 장항습지 갯물숲이 품은 버들장어 전시관이다

1월 3일부터 3월 12일까지 휴관이다

 

 

 

 

한강하구 장항습지 갯물숲 물고기 안내판

 

 

 

 

고양 게 포토존

 

 

 

 

행호쉼터 포토존 · 행호루(杏湖樓)

 

 

 

 

행주나루터 빗돌

강 건너에서 '사공'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노를 저어 건너가 나룻배로 강을 건네주던 나루터

한강에 아직 다리가 없었던 시절, 강 건너 장보러 가는 사람 · 친정에 가는 새댁 · 때로는 뱃놀이 나온 사람...

나루터는 지금으로 치면 버스터미널에 해당한다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았던 나루터

1978년 행주대교가 건설되면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생각만 해도 넉넉하고 푸근한 나루터다

*

공원을 만들면서 새로 만든 빗돌이다

 

 

 

 

예전 행주나루터 빗돌 · 행주리 3 · 1운동 만세 시위지 안내판

1978년 행주대교가 건설되면서 세워진 빗돌이다

 

 

 

 

행주서원(幸州書院)

헌종 8년(1842)에 세워진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적과 싸워 큰 공을 이룬 권율(權慄) 장군을 모신 곳이다

행주서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기공사(紀功祠)라 하였으나 6 · 25전쟁으로 소실되었고, 점차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판은 고종 때 무신으로 글씨와 문장이 뛰어난 신헌이 썼다

권율 장군은 선조 15년(1582) 문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선조 32년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3만명의 왜군과 싸워 2만4천명을 사살하는 행주대첩 전과를 올린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다

왜군이 철수한 선조 37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 벼슬을 받았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다

 

 

 

 

고양 행주성당(高陽 幸州聖堂) / 근대종교건축물 등록문화재 제455호

고양 행주성당은 서울과 경기 북부지역에서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다음에 지어진 성당으로 고양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서울로 통하는 한강 가에 자리하여 천주교의 전래와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1910년 처음 지어져 192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1949년에 새롭게 증축하였다

주 출입구는 팔작지붕 · 제대 쪽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성당의 건립 시기를 적은 상량묵서(上樑墨書)도 남아 있어 성당 건물의 역사를 살펴 보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의 행주성당은 처음 지어진 후 벽돌 벽과 시멘트 기와 등으로 변형되고 노후된 것을

1950년대의 사진 등 옛 모습을 고려하여 2015년 보수한 것이다

 

 

 

 

고양 행주성당(高陽 幸州聖堂) / 근대종교건축물 등록문화재 제455호

약현 본당 관할의 행주공소가 설립된 것은 1899년이다

처음 건립된 것은 20여 평의 맞배지붕 양식에 다섯 칸짜리 한옥이었다
10년 후인 1909년 5월에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신부로 김원영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하였다
1910년 8월 17일 뮈텔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28년 이축하였으며, 1949년 증축을 거쳤다

이때 과거의 상량문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문화재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

 

 

 

 

행주산성로 토끼굴

 

 

 

 

행주2교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충장근린체육공원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행신역

마침점이다

 

 

 

 

걸은 거리 10.6km, 소요시간 6시간 9분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소리길 4코스  (0) 2023.01.13
경안천생태습지공원  (0) 2023.01.13
고양 행주성당  (0) 2023.01.09
행주서원  (0) 2023.01.08
행주대첩기념관  (0) 202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