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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안성시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 버스로 안성시청 버스정류장으로 와서

안성성당 · 안성향교 · 아양동석불입상 · 도기동삼층석탑과 도기동산성을 거쳐 중앙대 안성캠퍼스로 돌아오는 걷기다

 

 

극적루(克敵樓) / 건립연대 고려 공민왕 12년(1363) · 복원연대 2013년

1361년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경기도의 30여 고을이 소문만 듣고도 항복하였으며, 어떤 관리는 관복을 갖춰 입고 맞아들이는 일까지 있었다

이때 안성사람들은 거짓으로 항복한 후 연회를 베풀다가 적군이 취한 틈을 타 괴수 6인의 목을 베고 남아 있는 적군을 물리쳤다

적군이 이로 말미암아 감히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고려군의 반격으로 크게 패하여 물러갔다

이에 공민왕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362년 그 공으로 안성을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키고

수원 관할인 양란 · 감미탄 · 마전 · 신곡 등 4개의 부곡을 이속시켰다

1363년 신인도가 새로이 안성군수로 부임하여 적을 물리친 공로와 군으로 승격된 영예를 표창하고

국가중흥의 공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누각을 건립하였다

그 후 1398년 정수홍이 군수로 부임하여 「극적루」라 이름 짓고 후대에 전하게 하였다

이 누각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안성초등학교 근처였으나 1700년을 전후로 없어져 이러한 의미를 후에 되새기고자 이곳에 다시 복원하였다

 

 

 

 

극적루(克敵樓) 현판

 

 

 

 

극적루 복원기(克敵樓復元記)

극적루 안에 걸려 있다

 

 

 

 

김춘명제천공적비(金公春明濟川功蹟碑)

해마다 장마들어 무너지는 징검다리 고치고 다시 놓기 삼십년을 이으신 분

슬하에 손도 없이 일흔아홉 한평생을 있는 힘 어진 정성 남 위하여 바치셨네

1957년 5월 2일 세웠으나 파손되어 1994년 9월 5일 외손들이 다시 세우다

- 빗돌 뒷면에 있는 글이다 -

 

 

 

 

봉산로터리

안성 도로원표가 소나무 아래 있다

 

 

 

 

안성마춤 유기공방 /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김수영

안성하면 먼저 안성마춤과 포도가 생각난다. 그 중 안성마춤의 유래가 된 유기(놋그릇)점이다

1946년 1대 고 김근수 유기장이 시작한 이래 현재 3대째 안성유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안성마춤유기박물관도 운영한다

 

 

 

 

박두진 생가터 가는 길 안내판

박두진은 1916년 3월 10일 안성군 안성읍 봉남리 360번지(지금 안성여중)에서 태여나

9살 때 보개면 동신리로 이사하여 18살에 서울로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동신리는 송동 · 평촌 · 동문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박두진이 살던 곳은 「고장치기」라 불리던 평촌마을이었다

고장치기는 청룡산을 바라보며 「사갑들」이라 부르는 벌판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박두진은 청룡산의 높고 푸른 산줄기와 사계절 내내 부는 사갑들의 바람을 헤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안성에서 살던 20여 년은 박두진의 문학적 상상력과 정서를 길러주었던 시간이었다

청룡산을 넘는 강렬한 햇빛과 짙푸른 하늘 · 사갑들의 거센 바람으로 기억된 안성의 자연은 훗날 박두진의 시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박두진 생가터(안성여중 비솔관)

오른쪽 체육관 자리다

 

 

 

 

BARBER SHOP

안성여중 앞인데 영어 간판이 여럿 있다

 

 

 

 

한옥

주련이 걸려 있는 한옥인데 사람은 살지 않는 것 같다

 

 

 

 

일식 판잣집처럼 외부만 장식한 것 같다

 

 

 

 

벽화

오래된 미래 - 안성에서 보다 안내판이 옆에 있다

 

 

 

 

오래된 미래 - 안성에서 보다 안내판

오래된 안성을 통해 미래의 안성을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마을커뮤니티 동고동락

 

 

 

 

안성성당 100주년 기념성전 · 100주년 로고스탑

 

 

 

 

안성성당 100주년 기념성전 내부

 

 

 

 

안성성당

안성 구포동성당(경기도기념물 제82호)은 1901년 프랑스 공베르신부에 의해 처음 건립됐다

현재의 건물은 보개면 신안리에 있었던 동안강당(東安講堂)의 목재와 기와 일부를 활용하여 1922년 재건된 것이다

평면은 긴 십자가형으로 날개채가 크게 돌출되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장방형에 가깝다

입구는 서쪽에 위치하며 중앙에는 회중석이 있고 동쪽 끝에는 제단이 있어 서양식 성당의 공간구조와 유사하다

회중석은 좌우에 고주(高柱)가 열지어 서 있는 신랑(身廊)과 그 옆의 측랑(側廊)으로 구성되었다

측랑 상층의 회랑(廻廊)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채광을 위한 고창이 나 있다

제단은 회중석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내부 천장도 모두 평반자 형식이다

구조는 목조기둥과 보가 짜맞추어져 골조를 이루고 그 사이에는 회벽으로 마감되었으며, 창문 아랫부분에는 화방벽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에는 서까래가 걸리고 한식 기와가 올려졌는데 처마는 비교적 짧다

1955년에는 전면 입구와 종탑이 로마네스크 풍으로 개축되었다

이 성당은 서양 가톡릭 성당의 형식을 따랐지만 재료와 결구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식이 적용된 절충식 건물로서 성당 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오늘날 안성의 대명사가 된 포도의 시초가 이 성당 포도밭이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촬영지 성당이다

 

 

 

 

안토니오 공베르(한국명 공안국)신부

1875, 4, 27 프랑스 아베이론 킴블라제 출생

1900, 6, 24 파리 외방선교회 신학교에서 사제서품

1900~1932 안성성당 재직

1950, 7, 15 평양으로 납북

1950, 11, 12 평안북도 중강진 선종

*

안성 구포동성당을 건립한 신부님이다 

 

 

 

 

성당 내부

천장 · 십자가 위 창 · 감실의 빛이 삼위일체를 이룬듯 보인다

 

 

 

 

안법고등학교

 

 

 

 

안법고등학교 100주년 이야기나무 빗돌

 

 

 

 

안성향교 풍화루(安城鄕校 風化樓) / 보물

2층으로 지어진 누각 형태의 건물로 하층은 안성향교 출입구, 상층은 유생들이 시를 짓고 사색을 즐기는 휴식공간으로 쓰였다

규모는 정면 11칸, 측면 1칸이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우리나라 향교 문루 중 가장 크다

풍화루는 향교 내부를 효과적으로 가리면서도 위압적이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게 지어졌으며

상층으로 올라가면 누마루가 넓게 트여 있어 시원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은 조선 초에 처음 세워져 임진왜란에 소실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다시 지은 것으로

부족한 목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구조적 안정성과 시각적 안정감 조화로운 비례감을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풍화루의 하층 기둥 일부는 처음 지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이 기둥을 깎고 다듬은 모양과 영쌍창 등은 조선 중기의 건축 연구에 중요한 학술 자료로 평가받는다

조선시대의 「학교등록 · 學校謄錄」에 '풍화루 및 동재의 방을 포함한 다섯 곳이

천둥과 벼락으로 깨지고 부서졌다'는 것과 1902년에 수리를 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명륜당(明倫堂)

이 향교 대지 아래 터에는 명륜당 · 동재 · 서재 · 풍화루의 강학공간이 있다

 

 

 

 

대성전(大成殿) / 보물

공자와 중국 및 우리나라 선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향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이곳에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2월과 8월에 이들을 기리는 제례를 올린다

안성향교 대성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7세기 중엽에 다시 지었다

1872년과 188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했지만 아직까지 건축의 형태와 구조 · 의장 등 지어질 당시의 특징이 잘 남아 있다

정면에 기둥을 세워 처마를 길게 드리운 툇간은 조선시대 향교 건축물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툇간을 구성하는 퇴량 위에 수직으로 걸어 지붕을 받치는 주심도리를 승두로 고정한 점

서까래 끝에 짧은 서까래를 덧붙여 겹처마를 구성한 점, 조선 중기 건축 기법의 특징들이 잘 남아 있다

대들보, 중보, 종보를 갖춘 삼중량의 지붕은 17세기 전반, 주로 남부 지방의 건축물에서 보이는 양식인데

특이하게도 중부 지방에 있는 이 건물도 삼중량 지붕을 얹고 있어 귀중한 학술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문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孔子) 초상화 · 위패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안자(顔子) · 사자(思子) · 맹자(孟子) · 증자(增子) 등 오성위(五聖位)와

공자 문하생 십철(十哲)과 동방 십팔현(東邦十八賢) 모두 33명에 대한 석전제(釋尊祭)를 춘향제(春享祭) · 추향제(秋享祭)로 지낸다

 

 

 

 

안성 걷고 싶은 거리 안내판

 

 

 

 

느티나무

안성향교에서 남파로 건너에 있다

 

 

 

 

향교길 벽화마을

 

 

 

 

향교길 벽화마을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날이예요!

 

 

 

 

명륜동 종소리길 안내판

 

 

 

 

하일상회

 

 

 

 

명륜동 한눈에 보기 안내판

 

 

 

 

금산교차로 건강탑

 

 

 

 

장안면옥

3대에 걸쳐 6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냉면 전문음식점으로 전국 10대 냉면 맛집으로 입소문 나 있다

품질 좋은 사태와 양지를 한약 달이듯 정성껏 가마솥에 끓여 육수를 만들고

메밀은 손수 빻아 직접 반죽해 만든 냉면과 수육무침 · 제육무침 · 빈대떡이 주 메뉴이다

*

1958년 개업 · 2018년 식신 우수레스토랑 맛집 선정 · 블루리본 서베이 맛집 선정 · 2019년 백년가게 선정

 

 

 

 

민속오일장 아치

 

 

 

 

민속오일장

 

 

 

 

중앙시장

 

 

 

 

민속오일장

나와서 돌아 봤다

 

 

 

 

내혜홀초등학교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峨洋洞菩薩立像) / 향토유적 제10호 · 안성 아양동 석불입상(峨洋洞石佛立像) / 향토유적 제15호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峨洋洞菩薩立像) / 향토유적 제10호

안성 아양동 석불입상과 나란히 서있는 거대한 보살입상으로 이곳 마을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미륵부처로 존숭(尊崇)해오고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젊은 장수가 도기리 탑산에서 뛰어올라 알미산을 딛고 비봉산 장수바위로 뛰어가다가 실수로 여미륵의 목을 차서 부러뜨렸다고 한다

이후 그 장수는 전쟁에서 전사하였고 아양동 사람들에 의해서 미륵의 머리는 복구되었다고 한다

원래의 위치는 현 위치에서 3m 앞이라고 하며, 일제 때 수해로 목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마을 주민들의 꿈에 미륵이 현몽(現夢)하여 주민들이 두레를 만들어 쌀을 거둬 복구했다고 한다

머리 부위에는 화관(花冠)과 화판(花辨)이 새겨져 있고 하단에 복발(覆鉢)이 있다

얼굴 전체의 인상은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후덕함을 느끼게 하며, 눈 · 코 · 입이 가지런하고 양귀는 가늘고 길다

보강한 목 부위에는 3도(三道)의 흔적이 엿보인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가슴에 얹었고, 밑으로 내린 왼손과 허리 부분의 하부 이하는 매몰되어 있다

가슴 앞에 영락(瓔珞)의 문양이 보이고, 어깨와 팔 부분에도 화문(花紋)이 보인다

불상의 전체적인 조법은 고졸(古拙)하고 토속화된 경향을 띄고 있다

전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본래의 높이는 약 11자반(3.8m)이라 하는데, 현재 보이는 부분은 높이 3.37m · 어깨 폭 1.18m의 규모이다

 

 

 

 

안성 아양동 석불입상(峨洋洞石佛立像) / 향토유적 제15호

아양동 보살입상 옆에 위치한 미륵불(彌勒佛)로 화강암 1석으로 으로 조각하였으며

수법이 고졸(古拙)하고 토속화 경향을 지닌 석불로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규모는 보살입상보다 작으며, 인상은 위엄이 깃들어 있다

머리 부위에는 관모처럼 두정에 표식이 있고, 눈 · 코 · 입이 가지런하고 귀는 짧고 목에는 3도(三道)의 표현이 없어 의문(衣紋)으로 보이는 넓은 띠가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팔에 걸쳤는데, 좌우의 늘어진 소맷자락에는 각각 3개의 의문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무릎 부위 하단부(下端部)부터 매몰되었는데 현재의 높이는 240cm · 어깨 폭은 79cm 규모이다

석불 앞 시멘트로 조성한 제단석은 「을사년 정월십사일 아양동 일동(乙巳年 正月十四日 峨洋洞一同)이라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1965년 1월 보수 때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성천

도기동산성이 건너 산에 있다

 

 

 

 

안성대교

 

 

 

 

안성천

안성 서희스타힐스NHF아파트 방향이다

 

 

 

 

계촌천

안성감리교회이 다리 옆에 있다

 

 

 

 

도기동삼층석탑이 있는 언덕이다

 

 

 

 

도기동삼층석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안성 도기동 삼층석탑(安城 道基洞 三層石塔)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6호

구 안성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도기동 입구 언덕 위에 건립되어 있는 이 탑은 높이가 5.4m로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백제계 석탑을 이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평면 사각형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은 여러 장의 돌로 조립된 지대석 위에 모서리 기둥(우주 · 隅柱)만이 조각된 기단을 놓았다

갑석은 1장의 얇은 돌로 만들었는데 아래에는 1단의 부연이 있다

탑신부 중 1층 탑몸돌만 여러 장의 돌을 사용하였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돌은 편평한 석재를 놓아 다른 석탑에서와 같은 조형미를 찾을 수 없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생긴 모양의 특이성 때문에 5층 옥개석이 소실된 5층 석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안성 도기동 삼층석탑(安城 道基洞 三層石塔)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6호

 

 

 

 

거북 비받침돌

안성 도기동 삼층석탑 옆에 있다

 

 

 

 

칠장산 · 칠현산

안성감리교회 · 청량산 뒤에 있다

 

 

 

 

안성대교 방향이다

 

 

 

 

예수비전교회 아치 · 안심사 빗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모두 문을 닫었다

 

 

 

 

안심사 대웅전

삼성각이 옆에 있다

 

 

 

 

도기동산성 / 사적 제536호

문화재보호구역 때문인지 길이 없다 

 

 

 

 

도기동산성을 오르며 돌아 봤다

 

 

 

 

도기동산성의 흔적 같다

 

 

 

 

도기동산성 내부에 넓은 터가 있다

 

 

 

 

도기동산성 흔적이다

 

 

 

 

안성소방서

아래 앞쪽 철탑이 있는 곳이다

 

 

 

 

아양LH 6단지 아파트 · 안성 서희스타힐스NHF아파트 · 안성하우스디NHF아파트

옥산대교 앞에서 봤다

 

 

 

 

옥산대교

 

 

 

 

안성3동 방향이다

 

 

 

 

예전 철교

걷기 다리로 만들었다

 

 

 

 

금석천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후문으로 가는 길이다

 

 

 

 

중앙대 다빈치인재개발원 앞이다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정문

중앙대 안성캠퍼스 시외버스정류장이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2.9km, 소요시간 6시간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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