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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보신각~서촌~백석동~석파정~무계정사

종각역에서 수송동과 광화문을 거쳐 서촌과 부암동을 걸었다
서촌 · 부암동은 경복궁과 가까운 곳으로 역사의 흔적들이 많은 곳이다

 

 

보신각(普信閣)
조선시대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과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종이 있던 곳이다
1396년(태조 5)에 지어진 종루는 원래 인사동에 있었지만 태종 때 지금의 종로로 옮겼다
원래 보신각에 있던 보신각종(보물 제2호)은 1468년(세조 14)에 주조된 것으로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이곳에 있는 종은 1985년에 새로 만들어 설치한 것이다

 

 

 

 

대심원 터(大審院址) 빗돌
종로2가 네거리에서 안국동 쪽으로 걷다 보면
왼쪽 에콰도르대사관 화단에 통감부 시기 최고법원이었던 대심원터 빗돌이 있다

 

 

 

 

수진궁터(壽進宮址) 빗돌
조계사 앞 사거리 왼쪽에 있는 중앙지도 사무실에 들렸다 잠시 걸으니 있다
수진궁은 세조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 8대 임금인 예종의 둘째 왕자 제안대군의 저택으로
조선 중기 이후 어려서 죽은 대군이나 왕자 · 출가하기 전 사망한 공주 · 옹주들의 혼을 모아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수진측량학교 터(壽進測量學校址) 빗돌
한말 개화사상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국비 유학생인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1908년 수진궁을 빌려 설립하였던 측량전문교육기관이다
종로구청 화단에 있다

 

 

 

 

정도전 집터(鄭道傳 家址) 빗돌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 삼봉 정도전이 집을 지으면서 장수를 비는 뜻에서 이곳을 수진동(壽進洞)이라 하였다
종로구청 화단에 있다

 

 

 

 

박인환 집터(朴寅煥 家址 1926~1956) 빗돌
1956년 이른 봄, 명동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경상도집」에서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이를 넘겨다보고 있던 이진섭(李眞燮)은 그의 시를 받아 단숨에 악보를 그려낸다
나애심은 이렇게 나온 악보를 들고 노래를 이어간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의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어"로 이어지는 「세월이 가면」이다
*
세종로 교보생명빌딩 왼쪽에 있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

서울도로원표가 있다

 

 

 

 

서울도로원표
고종 즉위 40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 쓰게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광무 6)에 세웠다

 

 

 

 

백악산(白岳山)
광화문광장은 겨울엔 스케이트장이였는데 잔디광장이 되었다

 

 

 

 

김정희집터 · 창의궁터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대림미술관으로 오르다 보면 있다
실제 추사가 살던 곳은 백송이 있는 창의궁터다

 

 

 

 

백송
우리나라 백송 중 높이 16m · 가슴높이 둘레 5m로 가장 크고 아름다워 1962년 12월 4일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7월 17일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됨으로써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홍기옥 백송할머니

백송을 사랑한 할머니이다

 

 

 

 

길담서원
2007년 문을 연 북 카페다

 

 

 

 

세종대왕 나신 곳 빗돌
시인 등 개인의 생가도 복원하는 시대에 우리 역사상 제일 위대한 세종대왕 생가엔 작은 빗돌만 있다

 

 

 

 

정철 선생 나신 곳 빗돌
이 언저리 장의동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 선생(1536~1593)이 태어난 곳이다

 

 

 

 

백세청풍(百世淸風) 바위 · 김상용 집터
청풍계는 자연 풍광이 빼어난 곳으로 임진왜란 이후 아우 김상헌과 함께 청절대신으로 유명한 김상용이 들어와 살던 곳이다
일제 때 삼정회사가 바위를 깨뜨려 집을 짓고 훼손하여 백세청풍이라 새긴 바위만 남아 있다

 

 

 

 

청운산장(清雲山莊) 빗돌
윤동주 시비가 있는 청운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청운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서시정(序詩亭)

 

 

 

 

창의문(彰義門)
조선시대 4소문 중의 하나로 북문 또는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윤동주 시비 언덕에서 봤다

 

 

 

 

시인의 언덕 오르는 길

내려와 돌아 봤다

 

 

 

 

액세서리 소품점

 

 

 

 

환기미술관
창의문을 지나 오른쪽 부암동 골목길을 내려가면 있다

 

 

 

 

제비꽃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집 대문에 걸려있다

 

 

 

 

통나무 담장

자연을 사랑하는 집인 것 같다

 

 

 

 

덤쟁이덩굴에게 양보했다

 

 

 

 

백석동천(白石洞天)
골목길을 돌아 왼쪽 산길로 들어서면 있다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몸통에 구멍 뚫린 나무

 

 

 

 

산속 벤치에서 이동식을 했다

 

 

 

 

백사실 계곡
백석동천은 인근 주민들에게 백사실계곡이라고 불리면서 이항복의 별장지였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별서 터 연못

육각정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뒤 높은 곳에는 사랑채의 돌계단과 초석이 잘 남아 있다

 

 

 

 

연못

사랑채 옆에 있다

 

 

 

 

별서 터 육각정 초석

 

 

 

 

삼각산 현통사(三角山 玄通寺)

일주문 옆 바위에 일붕 애국시가 있다

 

 

 

 

삼각산 현통사(三角山 玄通寺) 일주문

 

 

 

 

일붕 애국시(一鵬 愛國詩)
백석청류동(白石淸流洞) / 백석의 맑은 물은 마을에 흘러들고
간화청조성(看花聽鳥聲) / 꽃을 바라보는데 새 소리도 들려오네
일붕선일월(一鵬禪日月) / 일붕은 일월처럼 언제나 참선하며
애국만년정(愛國萬年情) / 나라사랑 영원히 이어가리라

*
삼장법사 일붕 서경보 운(三藏法師 一鵬 徐京保 韻)

 

 

 

 

탕춘대 한지마을 터 빗돌
국가에서 필요한 종이를 만들던 조지서에서 종이를 만드는 일을 했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태종 때부터 고종 19년까지 순지와 환지를 만들던 조지서가 있었고 1960년까지만 해도 종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전통을 이어왔었다

 

 

 

 

탕춘대 터 빗돌
탕춘대는 1506년 연산군이 경치가 좋은 이곳 바위 위에 세운 누대이다

 

 

 

 

세검정(洗劍亭)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관서팔경 중 하나로, 인조반정을 성사시킨 사람들이 칼을 씻었다는 전설과
숙종 때 설치했던 총융청을 북한산성 수비를 위하여 영조 때 이곳으로 옮기고 정조 24년 수간정사를 새로 세우고 세검정이라 했다

 

 

 

 

석파정 별당(石坡亭 別堂)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석파정 별당(石坡亭 別堂)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에 딸린 사랑채 건물로 1958년 서예가 손재형이 이곳으로 옮겼다

 

 

 

 

서예가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1981) 빗돌
1945년 광복 직후, 조선서화동연회(朝鮮書畫同硏會)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이 되고 「서예」라는 말을 창안하여 서예계에 영향을 끼쳤다

 

 

 

 

석파정(石坡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흥선대원군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은 「운현궁」이지만 시인 · 화가 · 풍류객으로서 대원군의 자취가 밴 곳은 바로 석파정이다
암반을 깎아 건축 중인 축대 위에 있다

 

 

 

 

비해당 터(匪懈堂址) /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2호 · 무계정사(武溪靜舍)
세종의 세째 아들 안평대군 이용이 살았던 비해당터 위에 무계정사가 있다

 

 

 

 

무계정사(武溪靜舍)
몽유도원도의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에서 기쁘게 놀았던 꿈을 꾸고서 정자를 지었다 한다

 

 

 

 

비해당 터(匪懈堂址)

 

 

 

 

현진건 집터(玄鎭健 家址) 빗돌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시절,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1년을 복역한 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43세 한참 젊은 나이에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
무계정사와 붙어 있다

 

 

 

 

반계 윤웅렬 별장 / 지방 민속자료 제12호 한옥
개화파 지식인 윤치호의 아버지 윤웅렬이 당시 도성내에 유행하던 성홍열을 피해 지내기 위해 지은 별장으로
1906년 건립 당시 2층 서양식 벽돌조 건물만 있었으나 그 후 한옥 건물 한 채를 더 지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재건축 중이다

 

 

 

 

청계동천(靑溪洞天)
안평대군이 무계정사 터와 이곳을 무릉도원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전환국터(典圜局址) 빗돌
고종 22년(1885)~ 광무 2년(1898) 근대식 백동전을 찍어 만들던 관아 자리다
삼성생명 본사 화단에 있다

 

 

 

 

백사실계곡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