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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만해기념관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의 출가 사찰이자, 위대한 만해정신의 산실이다
이러한 백담사에 민족의 자랑이요 · 겨레의 큰 스승 만해 한용운 선사의
유묵과 자료를 한자리에 모은 만해기념관을 개관하여 만해정신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만해기념관은 만해의 유물 8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 상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희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만해기념관

 

 

만해 한용운 선사 상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여났다
1892년 부친의 뜻에 따라 향리에서 전정숙(全貞淑)과 혼인하였다
1896년 입산을 결심, 승려가 되려 한 것은 불교계를 통해 무엇인가를 해보고자 한 때문이었다

 

 

만해기념관 내부

 

 

만해의 친필 유묵 병풍 영인본
기념품점에 있다

 

 

풍상세월(風箱歲月)
세월의 고달픔이 바람과 서리처럼 거칠고 매서움을 묘사한 글로
어려운 세월을 살고 있지만 그 험난한 역경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역설의 의지를 찾을 수 있다
*
유수인생(流水人生)
인생이 흐르는 물처럼 덧없음을 나타낸 글로
이 글귀에는 인생의 무상함이 나타나지만
흐르는 물로 추상화된 삶과 존재의 본질을 깨우치려는 만해 선사의 고뇌가 엿보인다

 

 

만해 한용운 선사 연보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여났다
1905년 백담사에서 연곡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법명은 봉완 · 법호는 용운 · 자호는 만해이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33인의 대표로 독립선언 기념연설을 하고 3년간 옥고를 치뤘다
이후 많은 인사들이 친일파로 전락하였으나 스님은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독립운동과 불교혁신에 헌신했다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南國黃花早未開(남국황화조미개) / 남국의 국화꽃 채 피지 않고
江湖薄夢入樓臺(강호박몽입루대) / 강호에 노는 꿈이 누대에 머물렀네
鴈影山河人似楚(안영산하인사초) / 기러기 그림자가 산하에 인간의 형상처럼 비추고
無邊秋樹月初來(무변추수월초래) / 가이없는 가을 나무 사이로 달이 뜨네

 

 

만해 초상

 

 

兩岸廖廖事事稀(양안요요사사희) / 두 언덕이 아득하여 희미하니
幽人自賞未輕歸(유인자상미경귀) / 그윽한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며 쉽게 돌아오지 못하누나
院裡微風日欲煮(원리미풍일욕자) / 절속에 미풍은 불고 해는 타는 듯한데
秋香無數撲禪衣(추향무수박선의) / 가을 향기 무수히 선의를 때리누나

 

 

홍주 동헌 · 홍주성 동문 조양문 · 충남 홍성군 생가 사진
만해가 부친을 따라 홍주 읍내로 나와 홍주 동헌의 정문인 홍주아문을 중심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
만해가 어린시절을 보낸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 생가 홍성군민의 노력으로 1992년 복원되었다

 

 

만해 이력서
2장 중 한 장이다

 

 

만해 이력서

 

 

사상의 형성
백담사에서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세계지리를 정리한 「영환지략」을 읽고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자,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905년경 먼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갔다
배를 타기 위해 원산으로 가던 중 두 명의 승려를 만나 일행이 되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부두 근방에 숙소를 정하였으나 그들을 일진회원으로 오인한 교포 청년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동포간의 반목과 살육에 크게 낙담한 그는 실의에 빠져 귀국하였다
그 후 일본의 신문물을 견학하고 돌아온다

 

 

1905년 만해가 출가한 백담사 전경 · 오세암 · 건봉사 사진
만해는 1910년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함으로써 만해의 불교정신이 태여난 곳이다

 

 

 

음빙실문집 · 영환지략
조선불교유신론 · 불교대전

 

 

오도송(悟道頌)
1917년 12월 3일 오세암에서 참선 중 진리를 깨우치고 읊은 오도송
*
1918년 9월 1일 창간된 「유심」의 창간 권두시 「심(心)」

 

 

조선불교의 정립
임제종운동을 통하여 한 · 일 불교동맹조약을 분쇄하던일에 몰두하던 한용운은 인간 정신의 유신을 위하여 「조선불교유신론(1913)」을 탈고한다
이 책은 당시 조선 불교의 현상을 비판하고 당면 과제를 지적하며 자유와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개혁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이다

 

 

만해의 님의 침묵 · 만해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 선과 인생

 

 

박한영 · 범어사 · 송광사

 

 

조계사
한국 불교를 일본에 예속시키려는 총독부의 방침에 따라 개최된 31본사 주지회의에서 한용운 선사가 한 연설문

 

 

조선청년에게
현대의 조선청년은 불운아라고 할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켜 어리석고 근시안적 소견이라하는 것이다

 

 

무제 · 시조 「사랑」 · 「코스모스」 · 소설 「죽음」 · 권두시

 

 

3 · 1운동과 독립투쟁
191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수양잡지 「유심(維心)」을 간행하였다
이것이 3 · 1운동의 전위적 역할을 하였다

 

 

3 · 1운동 당시 민족대표가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태화관 전경
3 · 1운동 당시 덕수궁 앞에서의 시위 광경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서 만해와 손병희가 좌장한 가운데 거행된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식 기록화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

 

 

조선인이 조선민족을 위하여 스스로 독립운동하는 것이 백번 마땅한 노릇한데
일본인이 어찌 감히 재판하려 하느냐
- 3 · 1독립선언 후 재판정에서 -

 

 

무제 · 가을 느낌 · 옥중의 감회 · 전송하는 시
옥중 투쟁 3대원칙

 

 

만해의 출옥 사진
마포형무소를 출옥한 만해의 옥중감상기를 보도한 신문기사 / 1920. 11. 23

 

 

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 / 남아가 어디메나 고향인 것을
기인장재객수중(幾人長在客愁中) / 그 몇 사람 객수(客愁)속에 길이 갇혔나
일성갈파삼천계(一聲喝破三千界) / 한 마디 큰 소리 질러 삼천대천 세계 뒤흔드니
설리도화편편비(雪裏桃花片片飛) / 눈속에 복사꽃 붉게 붉게 피네

 

 

만해 한용운의 한시(漢詩)집
총 163수가 실렸다

 

 

조선불교 유신론
1910년 백담사에서 탈고되고 1913년 5월 25일 서울불교회관에서 발행한 책
인간 정신의 개혁만이 당시 불교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음을 밝힌 불교 개혁 이론서

 

 

석가여래 사리탑비명
범어사에 만해 한용운 스님이 직접 글을 짓고 세운 석가여래 사리탑비명

 

 

독립선언서

 

 

대한민국장 / 훈기번호 제25호
대한민국 건국 공로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이 1962년 정부로부터 선사에게 수여되었다

 

 

周甲日卽興(주갑일즉흥) / 회갑 날의 즉흥
悤悤六十一年光(홀홀육십일년광) / 바쁘게도 지나간 예순 한 해
云是人間小劫桑(운시인간소겁상) / 이 세상에선 소겁 같이 긴 생애라고
歲月縱令白髮短(세월종령백발단) / 세월이 흰머리 짧게했건만 
風霜無奈丹心長(풍상무내단심장) / 풍상도 일편단심 어쩌지 못해
聽貧已覺換凡骨(청빈이각환범골) / 가난을 달게 여기니 범골도 바뀐 듯
任病誰知得妙方(임병수지득묘방) / 병을 버려 두매 좋은 방문 누가 알리
流水餘生君莫問(류수여생군막문) / 물같은 내 여생 그대여 묻지말게
蟬聲萬樹趁斜陽(선성만수진사양) / 숲속 가득 매미소리 사양 향해 가는 몸을

 

 

님의 침묵
1926년 5월 20일 회동서관에서 발행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최초 시집
사랑의 증도가, 20세기 석굴암의 대불과 견줄 수 있는 우리의 고전으로 님의 침묵 · 알수 없어요 등 한용운의 초기 시 88편이 수록되어 있다

 

 

불교대전
1914년 4월 범어사에서 탈고되고 신문관에서 발행했다
경 · 율 · 론 삼장 즉, 팔만대장경에서 주옥같은 경구를 뽑고 다시 주제별로 정리한 현대불교 성전의 전형을 보여준 만해의 불교정신이 담긴 책이다

 

 

선(禪)
1932년 2월 1일 선학원에서 발행한 「선원」 제2호의 권두시

 

 

수양독본
제2과 고난의 칼날에 서라
세상사람들은 쉽고 성공할 일이면 하려고 하고
어렵고 성공할 가망이 적은 일이면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회활동
3 · 1운동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른 후
철창철학 · 육바라밀 등의 강연을 하며 청년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3년 3월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창립총회 기념사진
1926년 6 · 10만세운동 당시 만해가 체포되었음을 보도한 신문기사

 

 

신간회 서울총회 광경
이 총회에서 서울지회장으로 피선되었다

 

 

사회운동과 민족운동 등
만해가 각종 잡지에 기고한 논설들

 

 

만당 선언문
만해의 필적이 담긴 무애도자기
경남 사천 다솔사의 만당 당원 비밀회합 장소

 

 

알 수 없어요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전 주미대사 한병기 기증품이다
국회의원과 주미대사를 지냈던 한병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 첫째 부인 김호남의 장녀 박재옥 남편이다

 

 

만해 선사 친필 유묵

 

 

심우장의 정절 · 입적추모
성북동 만해의 심우장이 북향집이 된 이유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말년을 보낸 심우장
만해선사께서는 총독부가 보기 싫다하여 북향으로 집을 지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망우리 만해 한용운 묘소

 

 

만자소화문 황장삼회장 저고리(복장 유물) 복제품
백담사 극락보전에 주불로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불(보물 제1182호)은 영조 24년(1748)에 조성되었다
그 속 복장유물 가운데 하나다
당대의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만해기념관 내부
*
(202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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