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일이 있어 5주간 걷기를 못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져 가벼운 걷기로 월미도를 찾았다
인천역
물류로 인해 인천항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 인천항은 일제가 여주 이천 지역의 쌀과 소래 남동 등지의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1937년부터 수인선을 운행했다
*
인천 월미도모노레일 · 인천씨티투어 출발지인 인천역관광안내소가 좌우에 있다
시점이다
인천역 철도차량기지 방향
우회고가사거리에서 봤다
인천항 제8부두 출입문
소금 · 원당 등을 취급하는 청정잡화부두다
새우젓골목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새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창고와 가게들이 있었던 곳이다
골목에는 건어물가게도 있었으나 부두가 사라지면서 새우젓도 함께 떠나버리고
빈 창고와 가게는 인근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들어와 쪽방촌이 되었다
동일아파트
새우젓골목 옆에는 인근 섬과 주안염전에서 들어온 소금이 있었다
소금은 가마니나 포대에 포장돼 전국 각지로 실려 나갔다
소금을 부리던 그 앞에 부두를 사람들은 한염부두라고 불렀다
소금공장이 떠나고 그 자리에 동일아파트가 들어섰다
벽화가 있는 마을
대한제분 앞이다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적색해안) · 맥아더 길 빗돌
이 지점은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원수가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 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3곳(적색해안 · 청색해안 · 녹색해안) 중 한 곳이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1951. 2. 10~2. 11, 대한민국 해군 · 해병대 단독으로 감행한 제2차 인천상륙작전 승리를 현양하기 위해 상륙지점인 현 위치에 해군이 건립했다
북성포구 입구
인천상륙작전 적색해안 안내석 뒤에 있다
월미도 관광특구 아치
월미로
거대한 곡물저장고 벽화(높이 48m · 길이 168m · 폭 31.5m)가 보인다
「세계 최대 야외 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
북성포구 입구에서 월미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인천 월미도 모노레일 월미공원역
인천둘레길 13코스 안내
월미공원역 앞 보도에 있다
월미공원 아치
월미공원 바닥 그림
월미공원에 들어서면 오른쪽 월미문화관 · 왼쪽 한국전통정원이다
월미산
한국전통공원은 지난 번 걸었기에 오늘은 월미문화관 방향이다
월미문화관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나무계단을 다오르면 성곽이 나온다
월미공원역
성곽에서 봤다
월미공원역 · 곡물저장고 벽화
월미문화관
전통생활문화전시실
월미문화관 세 전시실 중 왼쪽 전시실이다
어좌 포토존
궁중문화전시실로 곤용포를 입고 어좌에 앉아 사진을 만들 수 있다
기획전시실
「규방다례」 전시 중이다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해군첩보부대는 1948년 6월 10일 창설된 이래 수백 회의 대북 비밀공작을 수행하였다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된 6 · 25전쟁 중 특히 1950년 9월 15일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영흥도 탈환 · 팔미도 등대 확보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인천상륙작전에 큰 공을 세웠다
해군첩보부대는 반세기 동안 이곳 월미도 언덕 위에 주둔하였다
당시 비밀공작에 투입된 해군첩보부대원들의 희생과 공훈은 지대하였으므로 이를 기리고 선양할 필요가 있었다
특수 임무 중에 산화한 350위의 영령들을 기리기 위하여 예비역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 동지들의 뜻을 모아 2011년 11월에 충혼탑을 세웠다
해군첩보부대 추모비
님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제27대 첩보부대장 백동일 글
몽금포작전 전승비
몽금포작전은 정부수립 전후 지속된 반란 · 폭동 · 납북 · 침투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 해군이 1949년 8월 17일, 적 항구 몽금포를 기습한, 납북선박 구출 및 응징 작전이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기념비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월미공원의 나무 아홉번째 이야기 / 선비나무 쉬나무
쉬나무 붉은 열매는 석유가 없던 시절에 열매를 짠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공부했다고 하며 월미공원을 환하게 밝혀주는 나무다
월미도 조탕
1910년 경술국치를 강제하여 조선에서의 통치권을 확보한 일본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월미도의 아름다운 풍치에 뒤늦게 주목하여 식민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918년 풍치지구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월미도 중턱에 회주도로를 가설하고
월미도 정상부를 비롯한 곳곳에 벚나무 · 아까시 등을 심어 가꾸었는데, 봄이면 활짝 피는 벚꽃이 특히 유명했다
1920년에 월미도 북서쪽 해안에 해수욕장을 개장한 데 이어 수족관 · 체육시설 · 야외극장 · 바닷물을 끊여 목욕하는 조탕 등을 연이어 조성하였고
193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빈 호텔 · 요정 용궁각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면서 수도권의 첨단 임해유원지로 각광 받았다
퇴역 경비정 206함(200t급)
규모 길이 43.3m · 폭 6.3m로 1976년 건조 돼 25년간 서해에서 해상경비 및 구난활동을 벌이다 2001년 8월 퇴역했다
전성기 때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들을 잇따라 나포, 중국 어선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1999년 서해교전에도 참여 · 어선들을 안전 해역으로 유도하고 해군 고속정을 지원하며 맹활약한 경비정이다
이청호 경사 · 오진석 경감 흉상
인천상륙작전 그린비치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다
해양경찰경비정 옆에 안내판이 있다
1900년대 초 월미도의 전경
월미 평화의 나무 첫 번째 이야기 / 치유의 나무 은행나무
수형이 가장 멋지고 품격이 있어 시민들과 친숙한 나무이다
제7 미국 보병사단 상륙 10주년 기념비
인천둘레길 · 달빛누리길 방향안내판
인천둘레길 방향안내판
해월관광호텔
영종도
월미도에서 봤다
월미공연장
영종도행 선착장
월미문화의 거리
월미놀이동산
제8부두를 끼고 인천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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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이 마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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