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우이령을 경계로 그 북동쪽을 도봉산이라 부르며
주요 봉우리로 자운봉(739.5m) · 만장봉(718m) · 선인봉(708m) 등 세 개의 봉우리와
오른쪽에 5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오봉(五峰 · 660m)은 산세가 웅대, 험준하며 그 형상이 준수하고 기품이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
항상 많은 산객들이 붐벼 의도치 않게 피하던 도봉산 포대능선을 올랐다
도봉산역
시점이다
다락원 터(樓院店址) 빗돌
조선시대 사상도고(私商都賈)들이 북방어물을 매점하는 등 상업활동을 하던 곳이다
*
도봉산역에서 길 건너에 있다
산행 뒷풀이 술집들이 있는 곳이다
도봉산
공영주차장에서 봤다
유희경 · 이매창 시비
유희경은 하층민이었으나 품계가 종2품까지 올랐으며, 도봉서원 창건의 전반적인 책임을 맡았다
이매창은 전북 부안 출신 기생으로 황진이 ·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힌다
*
이화우 흩부릴 제 / 이매창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매창을 생각하며 / 유희경
그대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에 비뿌릴 젠 애가 끊겨라
*
먼 곳 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북한산국립공원 빗돌
도봉산국립공원 비
선인봉 · 만장봉 · 자운봉 등이 보인다
도봉동문(道峯洞門)
우암 송시열의 친필로 한학을 연구하는 후학들의 이정표이며
학문의 중심이었던 「도봉서원」의 전당에 들어섬을 알려주고 또한 도봉산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석각이다
서원말(書院洞) 터 빗돌
이 주변은 1573년(선조 6) 창건된 「도봉서원」 아래에 형성되었던 서원말이다
국립공원 산악박물관
평일이어서인지 문이 잠겨 있다
도봉산 광륜사 일주문
신라시대(서기 673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사찰 이름은 만장사(萬丈寺)였으며, 천축사 · 영국사와 더불어 도봉산의 대표적인 가람으로 성장하였으나
조선시대 중기(1573년)에 이르러 양주목사 남언경에 의해 영국사(지금의 도봉서원)가 폐사 되었고
도봉산 입구에 위치한 만장사 또한 쇠락해오다가 임진왜란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조선시대 후기 조대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년)가 부친인 풍은부원군 조만영이 죽자
풍양조씨 선산과 인접하고 산수가 수려한 도봉산 입구에 만장사(지금의 광륜사)를 새로 짓고 자신의 별장으로 만년을 보냈다
그 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국정을 보기도 했다
녹야선원 갈림길
이왕 한적함을 즐기려 왔기에 오른쪽 길로 들었다
녹야선원
망월사 주지 만월당 대선사가 무학대사의 비결론을 접하고 "도봉산 만장봉 아래 십 리쯤 되는 곳에 묘한 절터가 있다"는 문구를 보고 살피던 중
이곳이 비결론에 나오는 곳이라 생각하고 사찰을 창건하고 녹야원이라 했다
지금의 주지 혜안 스님이 녹야선원이라 고쳤다
녹야선원을 지나면 바로 작은 폭포가 있다
약수터가 있는 은석암 갈림길을 지나 다락능선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오층석탑
석탑보다 울타리는 더 오래되어 보인다
안내문이 없다
다락능선
자운봉 1.4km 방향안내판이 있다
선인봉 · 만장봉 · 자운봉이 보인다
이동식을 하는 빅터
구름이 끼고 바람도 살짝 불어 자켓을 입고 이동식을 했다
선인봉 · 만장봉 · 자운봉
까마귀가 쳐다 보는 듯하다
이동식을 하는 동안 까마귀는 주위를 돌다 앉곤 했고 헬기는 아랫녘에서 물건을 옮기느라 분주했다
포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구간 바로 앞에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있다
알아보니 얼마전 사고가 있었다 한다
만장봉(718m) · 자운봉(739.5m) · 신선대(726m)
포대 정상 바로 밑에서 봤다
포대 정상 조망대
사패산
포대능선이 사패능선으로 이어진다
포대능선 Y계곡 안내판
지난 10년간 사상자 25명 · 안전한 탐방로를 이용하기 바란다는 안내판이 있다
Y계곡을 오르는 빅터
계속되는 암릉 구간이다
좁은 바위 틈을 지난다
뒤돌아 본 Y 계곡이다
만장봉 · 자운봉
Y 계곡을 올라선 마루금에서 봤다
만장봉 · 자운봉
자운봉 · 신선대
자운봉(739.5m)
도봉산 정상이다
우이암 · 주봉
북한산 백운대 · 인수봉 · 만경대 등이 뒤로 보인다
마당바위로 가는 길이다
마당바위
소나무 옆에서 이동식을 했다
우이암
이동식을 하며 봤다
까마귀
천축사로 오르는 계단이다
천축사(天竺寺)
673년 의상이 수도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옥천암이라는 암자를 세웠고 고려 명종 때 영국사가 들어섰다
1398년 조선 태조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절을 새롭게 고치고 천축사라 명하였다
1474년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가 화류용상을 절에 바치고 불당 안에 부처를 모시는 불좌를 만들었다
도봉산 천축사 일주문
천축사에서 먼 곳까지 등불이 있다
도봉대피소 화장실
바위 계단
선인봉
포토 포인트다
고산앙지 경진 7월(高山仰止 庚辰 七月)
숙종 26년(1700) 7월에 곡운 김수증(金壽增 · 1624~1701)이 쓴 글씨다
시경에 나오는 문구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뜻이다
김수증이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르는 마음에서 새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
글씨가 물에 잠긴걸 보니 바위가 예전보다 밑으로 내려온 듯하다
도봉서원 터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옛 「영국사」 터에 위치해 있다
남언경이 양주목사로 부임하여 1573년(선조 6)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암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
「서울 도봉서원 보존정비구역 내 유적」 안내 펼침막이 있다
도봉서원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73년 건립된 옛 도봉서원이다
그 후 1696년 도봉서원에 송시열의 신주를 추가로 모셨다
도봉서원은 말하자면 도(道)를 깨치기 위한 당시 학자들의 정신적 성지였던 셈이다
*
2001년 11월 25일 사진이다
도봉서원 유도문
1573년 건립된 옛 도봉서원의 삼문이다
*
2002년 4월 13일 사진이다
쌍줄기약수터 앞
도봉산역이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10.8km, 소요시간 6시간 3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