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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북한산(비봉~문수봉)

하늘은 푸르고 맑다

산은 뽀얀 속살을 내보인다

자연에 흡수되고 싶다

*

북한산 비봉능선은 백운대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주능선이 문수봉에서 의상능선과 비봉능선으로 갈라지는데

비봉능선은 문수봉에서 승가봉 · 사모바위 · 비봉 · 족두리봉으로 이어진다

 

 

향로봉

시점인 이북오도청 버스정류장에서 봤다

 

 

 

 

연화사 대웅전(蓮花寺 大雄殿)

향로봉 줄기가 보인다

 

 

 

 

금선사(金僊寺)

금선사 후원에 있는 연화당 · 대적광전 · 삼성각이다

 

 

 

 

목정굴(木精窟)

금선사는 려말조초(麗末朝初) 고승 자초무학(自超無學)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정조는 슬하에 세자가 없어 고심하던 중 한수북녘에 계행을 엄히 지키며 수십 년간 산문 출입을 금하고 있던

농산이란 고승이 주석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마침내 그에게 세자탄강(世子誕降)을 위한 기도를 명하게 되었다

농산은 바로 이곳 「목정굴」에서 100일간 관음기도를 올린 것이다

이때 왕실에 발신을 알 수 없는 봉서 하나가 올라왔는데 "庚戌 6월 18일 世子誕降(경술 6월 18일 세자탄강)"이라 적고 있었다

과연 순조는 1790년 이날 태여났다

이날 서북쪽으로부터 맑고 붉은 서기가 왕실에 닿아 산실(産室)을 휘감고 있었다

사람을 놓아 그 진원을 추적하게 하니 그곳은 다름아닌 이곳 목정굴이었다

굴안에는 좌탈입망(坐脫立亡) 한 체로 있는 농산 스님의 탈곡신(脫穀身) 뿐이었으나 서기는 여전히 그의 정수리로부터 산실로 흘러들고 있었다

농산 스님의 입적과 순조(純祖)로의 환생을 목도한 정조는 내수사(內需司)에 명하여 목정굴을 크게 중창하게 하였으니 곧 「금선사」다

 

 

 

 

목정굴 내부

그후 일제의 강점으로 금선사는 폐사가 되었으나 광복 후 도공(道空)스님이 중건하였고

현 주지 법안(法眼) 스님이 목정굴을 1996년 3월 복원하였다

지금도 금선사에는 순조의 탄신제를 모시고 있다

 

 

 

 

향로봉 마루금

금선사를 지나 절터샘 못미쳐 있는 바위에서 봤다

 

 

 

 

향로봉 0.2km · 사모바위 0.8km 방향안내판

절터샘을 지나 마루금으로 올라서니 비봉능선이다

 

 

 

 

비봉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정상에 있다

코뿔소바위」가 정상 밑으로 보인다

 

 

 

 

코뿔소바위

코뿔소바위 왼쪽 백운대 · 만경대 사이 앞에 노적봉이 있고

그 앞 마루금 오른족부터 보현봉 · 문수봉 · 칠성봉 · 715봉 · 나한봉 · 나월봉이 있다

 

 

 

 

오른쪽 사모바위 앞으로 의상능선 · 그 뒤로 백운대 · 만경대 · 노적봉 · 염초봉 · 원효봉이 있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국보 제3호 복제품)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새로이 확보한 영토의 국경을 직접 둘러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러한 비를 순수비(巡狩碑)라 부르는데,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곳은

현재 경상남도 창녕 · 함경남도 이원의 마운령 · 길주의 황초령 · 북한산 비봉 등 4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비봉에는 복제품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

이 비문은 글자가 마멸되어 전체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진흥왕의 영토확장과 지역순시를 칭송한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나오는 인명 · 지명 · 관직명 등은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

원래 이 비는 오랜 세월이 흘러 세상사람들에게 잊혀지고 글자도 읽기 힘들게 되어

조선시대에 무학대사가 조선왕조의 도읍지를 찾아다닐 때

이 비봉에 올라와 보니 "무학이 잘못 찾아 여기에 왔다(無學誤尋到此)"라고 쓰여 있어 급히 내려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되고 무학대사 비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

1816년 당대의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이 비를 직접 찾아보고 비문을 탁본하여 연구한 결과 모두 68자를 읽어냈고

이 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혔다

이듬해 김정희는 다시 이 비를 찾아와 비석 옆면에 자신이 이 비를 찾은 날짜와 이 비가 바로 신라진흥왕순수비임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을 새겨놓았다

원래 비석 윗부분에는 덮개돌이 씌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인왕산

비봉에서 본 이북오도청 방향 비봉능선이다

능선 중앙 오른쪽 푸르스름한 ㄴ자건물이 이북오도청 건물이다

 

 

 

 

남산 서울타워 

청계산 · 관악산이 뒤에 있다

 

 

 

 

족두리봉 · 향로봉 마루금

 

 

 

 

1 · 21사태 무장공비 은신장소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무장을 점검하며 최종 은거한 장소다

1968년 1월 16일 황해도 연산을 출발한 북한군은 1월 19일 법원리에서 나무하러 온 우씨 형제에게 발견되어 신고를 받은 파주경찰서는

즉시 현장에 병력을 배치 시켰으나 30kg의 군장을 메고 시간당 10km를 주파하는 북한군은 이미 작전지역을 벗어나 있었다

*

북한군은 1월 21일 22시에는 자하문 근처 세검정 길을 따라 2열 종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현장을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이 무장공비의 총탄에 맞아 순직하였고 31명 중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는 한국으로 귀순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였다

 

 

 

 

비봉 · 관봉

사모바위 앞 헬기장에서 봤다

 

 

 

 

사모바위

사랑하는 여인을 애틋하게 기다리다 바위가 된 남자의 전설이 있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전쟁터에 갔다 다행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오니 사랑하는 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남자는 여인이 풀려나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청나라로 끌려간 여인들은 풀려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산 자락 지금의 홍은동 지역에 모여 살았다

남자는 여인을 찾으려고 그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고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사모바위

승가봉 못미쳐 바위에서 이동식을 하며 봤다

 

 

 

 

승가봉(567m)

뒤로 나한봉 · 715봉 · 문수봉 · 보현봉이 있다

 

 

 

 

서울 남산

 

 

 

 

의상능선

북한산 백운대가 뒤로 보인다
의상능선은 신라 의상대사의 참선도량이 있던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롯데월드타워문수봉 · N서울타워

 

 

 

 

문수봉 쉬운코스 · 어려운 코스 방향안내판

오른쪽 어려운 코스로 간다

 

 

 

 

문수봉 코스

험한 바윗길이지만 비봉과 달리 철난간이 있다

 

 

 

 

연꽃바위

 

 

 

 

칠성봉 · 문수봉

 

 

 

 

구기계곡

 

 

 

 

불꽃바위 · 연꽃바위

 

 

 

 

불꽃바위 · 연꽃바위

문수봉으로 가다 돌아봤다

 

 

 

 

칠성봉(727m)

 

 

 

 

백운대 · 만경대 사이로 앞쪽 노적봉 · 뒷쪽 인수봉이 보이고 백운대 왼쪽 염초봉 · 오른쪽 뒤로 도봉산이 있다

칠성봉에서 봤다

 

 

 

 

인수봉

백운대 · 만경대 사이로 이마를 내민 봉이다

 

 

 

 

칠성봉(728.4m)

 

 

 

 

문수봉(727m)

 

 

 

 

칠성봉(727m) 안내목

문수봉에서 봤다

 

 

 

 

북한산성

붉은 빛이 감도는 북한산 대남문 방향이다

 

 

 

 

보현봉(714m)

보현보살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으로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여래를 양쪽에서 보필하는 협시보살로

석가여래 왼쪽 문수보살 · 오른쪽 보현보살이 있다하니 석가여래는 서울을 등지고 있는 셈이다

 

 

 

 

한강과 인천바다가 햇살에 빛난다

사진으로 보니 한강에서 인천이 1cm 거리다

이렇게 가까운 곳인가 싶다

 

 

 

 

대남문

북한산성 남쪽 문으로 14성문 중 하나다

 

 

 

 

삼각산 천연문수동굴

문수사는 1109년에 탄연(坦然)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스님은 주위의 기암괴석이 이루는 경관과 천연 동굴에 매료되어 이곳에 전각을 지어 문수암이라고 하고 동굴은 문수굴이라 하였다 한다

문수사에서 대통령 이승만의 어머니가 나한기도를 하여 이승만을 얻었다고 하며 이 인연으로 이승만이 직접 쓴 현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이승만 어머니는 여러 곳에서 득남기도를 하신 모양이다

 

 

 

 

삼각산 천연문수동굴(三角山 天然文殊洞窟)

일해(日海) 전두환이 썼다

 

 

 

 

삼각산 천연문수동굴 내부

 

 

 

 

문수봉

하산하며 돌아봤다

 

 

 

 

고광교

 

 

 

 

우정교

나무다리로 계곡을 여러 번 건너며 내려간다

 

 

 

 

나무데크 길

 

 

 

 

대동단 본부 터

비밀 항일열사 대동단이 자리 하던 곳으로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구기분소를 지난 곳이다

*

구기동 버스정류장이 마침점이

 

 

 

 

북한산 등산지도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5km, 소요시간 6시간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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